• 2020. 9. 1.

    by. lemonciga_99

    윤희에게

    [윤희에게]는 쥰이 쓴 한 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윤희의 고등학교 친구였던 쥰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살게 된다. 쥰은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한국에 있는 윤희에게 편지를 쓰지만, 용기가 없어 부치지 못한다. 이 편지를 쥰의 고모 마사코가 발견하고 우체통에 넣으며, 쥰의 편지는 윤희와 윤희의 딸 새봄에게 닿는다. 편지를 본 새봄은 엄마를 위해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여행을 떠나기 전 윤희는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윤희의 얼굴에서 삶의 즐거움, 재미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윤희에게 딸인 새봄은 "엄마는 왜 살아?"라는 질문을 던진다. 윤희는 이에 자식 때문에 산다고 대답하고, 새봄은 이제 자신을 위해 살 필요 없다며, 이제는 엄마 자신을 위해 살아가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하려 한다.

    새봄은 편지 이후 엄마에 대해 궁금해한다. 새봄에게 엄마는 아빠보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없으면 제대로 못 살 거라고 생각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새봄은 엄마를 사랑하고 자신이 엄마를 닮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엄마를 닮았다는 삼촌의 말에 웃거나, 끊임없이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만 찍고 싶기에 인물 사진은 찍지 않는다는 새봄의 첫 인물 사진 주인공이 바로 엄마 윤희였다. 새봄에게 엄마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 중 하나였다.

    윤희는 쥰의 편지 이후 그동안의 삶에서 벗어난다. 갑자기 일에 나가지 않기도 하고, 일본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 그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회사를 떠나며 그동안의 괴로움과 고단함으로 인한 피곤과 무기력함만 있던 윤희의 얼굴에 활기와 미소가 찾아온다. 그렇게 윤희와 새봄은 쥰이 사는 일본 오타루로 떠난다.

    일본 여행을 하며 새봄은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엄마가 자신에 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것, 자신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 심지어 애인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음을, 단지 자신이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음을 듣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담배를 핀다는 사실, 부모님이 대학교에 가지 못하게 하여 카메라를 받았다는 사실, 엄마의 옛 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게 새봄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알아가고, 둘의 관계가 여행 이전보다 많이 개선되었음을, 서로를 보며 웃는 모습과 눈싸움을 하며 서로 장난치는 모습 등을 통해 보여준다.

    새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윤희는 쥰을 찾아가지 못한다. 아침 일찍 쥰의 집 앞으로 찾아가지만 출근하기 위해 나오는 쥰을 피해 숨거나, 친구를 만났냐는 바텐더의 물음에 자신이 바랐던 쥰과의 재회를 마치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쥰 또한 용기가 없었다. 윤희가 생각날 때마다 편지를 썼지만 항상 부치지 못했고, 매번 처음 쓰는 것처럼 편지를 썼다. 서로 용기가 없는 둘은 쥰의 고모와 윤희의 딸 새봄 덕분에 20여 년 만의 재회를 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쥰의 편지에 대한 윤희의 답장이 나온다. 윤희는 쥰과의 일로 인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보내지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기도 한다. 윤희는 자신에게 있는 여생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음을, 그래서 스스로 '벌'을 주며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제 더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것이라고,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윤희가 이 편지를 쥰에게 보냈는지 알 수 없다. 윤희는 편지에 이 편지를 보낼 용기가 없다고 쓴다. 그럼에도 결론적으로 윤희는 일본 여행을 하며 쥰을 만나게 되고, 여행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윤희는 새봄과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이력서를 쓰고 새로운 일자리에 지원한다. 여행 전보다 웃음이 많아지고, 새봄과의 사이가 좋아지고,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한다. 매일 '벌'을 받기 위해 살아가던 윤희가 이제는 '꿈'을 꾸며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윤희에게 딸 새봄이 없었다면, 윤희는 일본에서 쥰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결말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해 정신병원에 보내졌던 윤희와 자신 때문에 엄마가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을 본 쥰. 자기 자신을 숨기며 살아온 둘은 새봄 덕분에 서로를 만나게 되고 20여 년 간 마음속에 쌓여왔던 감정들을 해소한다. 새봄은 끝이 없을 거 같은 겨울을 살아가던 엄마인 윤희와 엄마의 옛 애인이었던 쥰에게 새봄을 찾아주었다.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

    영화 속 쥰의 고모 마사코는 습관적으로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라고 말한다. 쥰은 눈이 그치려면 멀었다며,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물어본다. 이에 마사코 고모는 "막막하니까",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라고 답한다. 오타루의 겨울은 눈이 그치려면 아직 멀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또 숨이 막힐 만큼 눈이 내릴 것이다. 살다 보면 그렇게 막막하고 답답해질 때가 있다. 나아질 거 같지 않고, 악화되기만 할 때.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무기력해질 때. 그럴 때마다 마사코 고모처럼 '눈이 언제쯤 그치려나'주문을 외워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