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9. 2.

    by. lemonciga_99

    사투리와 선입견

    전학생인 수향은 거울 앞에서 인사 연습을 한다.

    똑같은 내용의 말을 조금씩 다르게 연습하며 무엇이 가장 좋은지 고민한다. 인사 연습을 마친 수향은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언니에게 전화가 왔음에도 받지 않는데 이는 수향이 ‘사투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학하게 된 학교의 교복을 사기 위해 교복점에 간 수향은 사장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사투리로 인해 자신의 출신지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그러자 수향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사장이 잠시 다른 손님에게 말을 걸러 간 사이 수향은 교복점을 나온다. 그리고 한강에서 한 친구를 만난다. 그 친구도 수향과 같은 사투리를 사용한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타일리스트가 꿈이라는 친구에게 수향은 그게 무슨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직업이지만 다른 곳에서 온 수향에게는 처음 듣는 낯선 직업일 뿐이다.

    교복을 받아 집에 돌아온 수향은 밤늦게 출근 준비를 하는 엄마와 마주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영화 전반적으로 수향은 외부에서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수향이 이야기할 때는 언니나 친구와 같은 비슷한 입장의 인물이 함께 있을 때다. 수향이 사용하는 사투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북한’ 사투리다.

    아마 수향의 말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추측조차 하지 못하는 말투라면 수향은 오히려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수향의 말투를 듣자마자 수향이 북한에서 온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수향에 관한 선입견을 품게 될 것이다. 한번 생긴 선입견은 하나의 족쇄가 되어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다. 북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느 정도 ‘지역에 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강원도에 살던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강원도 애들은 정말 감자를 많이 먹어?’였다. 이러한 질문들은 나의 출신지를 밝힐 때마다 필수 질문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고 짜증이 난다. 그렇기에 수향이 자신의 말투를 숨기려 하는 게 공감됐다.

    한국 사회에서 웃음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전학생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음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수향은 자기소개를 준비하며 웃는 연습을 한다.

    카페의 점장은 언니에게 웃으라고 말하고 웃음을 연습시킨다고 한다. 웃음을 연습시킨다는 말이 너무 강압적으로 다가오지만, 한국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꼭 하게 되는 일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는 ‘웃으면 욕을 덜 먹는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도 있지만 경험상 틀렸다.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그나마 웃고 있어야 욕을 덜 먹는다.

    웃지 않으면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 일하고 싶어서 하는 거 맞냐, 왜 그따위로 서 있냐 등의 말을 듣는다. 한국 사회에서 웃음은 ‘권력이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본인의 기분과 자존감을 위해 타인에게 감정 노동을 요구한다. 영화 내에서 수향의 주변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언니, 학교를 그만두고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친구,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언제까지 일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출근하는 엄마. 수향의 주변 사람들은 빨리 돈을 벌고 싶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출신지가 다르기 때문에,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흔한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웃지 않아도 괜찮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이전에 고용계약서를 쓰고 추가 수당을 알맞게 지급하는 일을 구할 수 있을까. 이주 여성에 관한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